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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믿음과 영성을 외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안에’를 강조하며 참된 믿음과 영성을 도전하셨다. 바리새인과 이단 교주의 유사점은 보이는 것과 보여 주는 것으로 영성을 나타내려는 태도다. 물론 바리새인보다 이단 교주의 해악이 훨씬 크다. 바리새인은 영성을 과시해 존경받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단 교주는 영혼을 미혹해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보여 준다는 말과 천국이 어떤 장소나 공동체에서 펼쳐진다는 말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다.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22-23절).” ‘인자의 날’이란 ‘신약 시대’ 혹은 ‘재림의 날’을 뜻하기에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한다.’라는 말씀은 보는 것에 너무 치중하지 말라는 암시의 말씀이다. 그래서 무엇을 보여 주면서 미혹하는 곳에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고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영성과 영적 체험은 다르다. 대개 영성은 보이지 않고 영적 체험은 보인다. 영성이 있는 사람과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은 그 영혼과 인격의 질적 차이가 크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성공의 차이가 아닌 영혼과 인격의 질적 차이로 생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똑똑하고 재능이 있거나 영적 체험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에 깊이와 무게가 있어서 영성이 있는 사람이다. 영성의 길은 아브라함의 길이고 영적 체험의 길은 롯의 길이다.
영성은 영혼에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지만 영적 체험은 감정 충만으로 치우칠 때가 많다. 당장에는 영성보다 영적 체험이 더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고 더 남의 시선을 끈다. 쉽게 말하면 영성은 영양가를 추구하는 것이고 영적 체험은 맛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련회 캠프파이어 때 죄를 뉘우치고 우는 체험을 했어도 왜 사흘만 지나면 이전과 똑같아지는가? 영적 체험은 있었지만 영성은 없기 때문이다.
영적 체험은 감정 차원에서 끝날 때가 많다. 올림픽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면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애국가 소리도 감동적이고 한국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곧 시선을 돌려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보면 실망감이 든다. 올림픽 금메달 수상이 감동의 눈물은 주어도 더 좋은 한국인을 만들지는 못한다. 보이는 영적 체험과 감동적인 찌릿함만 계속 추구하면 영혼이 피곤해지고 공허해지고 더 나아가 어리석어지고 신용도 잃는다.
어느 날 위대한 설교가 알렉산더 화이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한 여인이 찾아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때 화이트가 말했다. “부인! 내 진면목을 알면 내게 침을 뱉을 거요.” 그처럼 나의 부족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영성이다. 영적 체험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자랑과 과시에 빠지게 만들기 쉽다. 언행이 진실하고 고상한 것 같아도 은근히 과시하는 자랑의 본능과 흔적을 힘써 지우는 것이 영성이다. - ‘월간새벽기도’ 21년 7월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