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장 10절
'복음의 기초' 22편 말씀 중에서 1번째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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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초(1)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는가? (요한계시록 7장 10절)
< 4중 복음의 의의 >
요새 성도들은 ‘4중 복음’ 혹은 ‘5중 복음’이란 자주 들어서 그 어휘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4중 복음이란 내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The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약칭 - C&MA)’의 창시자인 ‘심슨 박사(Dr. A. B. Simpson)’에 의해서 기독교의 가장 뼈대가 되는 4가지 진리들이 엮어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4중 복음’이란 복음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심슨이 주장한 4중 복음의 진리란 예수님은 첫째, ‘구원의 주 그리스도(Christ Our Savior)’리고, 둘째 ‘성결의 주 그리스도(Christ Our Sanctifier)’이고, 셋째, ‘치유의 주 그리스도(Christ Our Healer)’이고, 넷째 ‘재림의 주 그리스도(Christ Our Coming Lord)’라는 말이다. 물론 복음이 이 4가지 진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축복들 및 이제까지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깊고 풍성한 체험들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서 복음은 ‘4중 복음(fourfold gospel)’ 이상의 의미를 가진 ‘다중 복음(manifold gospel)’이다. 그래도 역시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앞서 말한 4중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4중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강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고, 이 4가지 메시지는 ‘진리’라는 성전에 있는 4개의 위대한 기둥과도 같다.
심슨 박사는 자신의 삶에서 직접 주님을 구원의 주, 성결의 주, 신유의 주, 재림의 주로 체험하고 4중 복음의 진리를 요약해 엮었다. 그리고 4중 복음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많이 언급되었던 메시지이다. 4중 복음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성경적이고, 깊은 만족을 주는 메시지로서 성경 외에 4중 복음만큼 회심하려는 자들에게 더 좋은 메시지는 없다.
4중 복음은 오류와 배교에 대한 해독제로서, 실수에 대한 확실한 치료제로서, 주린 심령의 부르짖음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그리고 육신적인 건강의 원천으로서 교회와 성도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이다. 또한 증인의 삶을 완수하고 왕 되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서도 4중 복음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제 4중 복음의 메시지를 하나씩 깊게 살펴봄으로 복음을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하자
< 구원의 주 그리스도(Christ Our Savior) >
본문 말씀을 보라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본문 말씀은 말세의 심판의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이미 구원받아서 보좌 주위에 있게 된 사람들이 외친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을 보면 그렇게 구속받은 존재들이 ‘구원’을 외치는 동안 땅은 흔들리고 있고, 자연은 와해되고 있으며, 모든 것들이 첫 번째 대재앙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흔들리며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속받은 존재들이 그들의 영원한 집인 천국에 도달하고 나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과 구원을 받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완전히 파악한 후에 처음으로 외친 것이 바로 ‘구원’이란 외침이었다.
이미 구원받은 존재들은 천국에서 그때까지 주님이 그들을 인도했던 모든 장면들을 본다. 그 장면들이 죽 펼쳐질 때 그들은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위험들을 보고,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자상하게 그들을 인도해왔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었는지를 인식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거룩한 세마포와 면류관을 보고, 그들 앞에 펼쳐질 영원한 기쁨과 평강을 본다.
그 모든 것을 보고 나서 그들은 주님을 바라본다. 그리고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항상 지켜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구원의 축복이 온전히 그분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눈을 들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난 후에 그들은 소리를 높여서 기쁨과 환희에 찬 외침을 발한다. 그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외침이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 무엇으로부터 우리는 구원받았는가? >
본문에 나오는 장면과 외침을 묵상하면 구원의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게 된다. 구원이란 성도에게 가장 가치 있고 복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보다 하늘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더욱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구원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구원의 의미를 알기 위해 먼저 무엇으로부터 우리는 구원받았는가에 대한 살펴보자.
1. 정죄
구원은 자신이 전혀 희망이 없는 죄인이라는 인식과 형벌적인 사고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죄는 형벌을 낳는다. 구원은 이 형벌을 완전히 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영광스런 일이 아닌가?
2. 하나님의 진노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악을 벌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들의 모든 불의를 벌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그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3. 율법의 저주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우리는 율법이 주어질 때의 공포스런 상황을 회상할 수 있다. 그때 시내산 주변에 우뢰와 번개가 있었고,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모세에게 간청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
율법은 주신 것이 공포스런 일이라면 율법을 깨는 것은 더욱 공포스런 일이다. 나라의 법을 깨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법은 법대로 행사되고 정의는 충족되어야 한다. 법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죄인은 반드시 법대로 심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구원은 이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대시 저주와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4. 악한 양심
사람에게는 죄 및 회한의 감정에 의해 마음속에 남겨진 어두운 그림자가 항상 있다. 그 그림자는 항상 소름끼치는 소리로 우리 귀에 속삭거리면서 절망감을 부추긴다. 그처럼 사람들은 과거의 죄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어떤 때는 죄의식은 잠시 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어느새 다시 그 죄의식이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덮친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를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마음으로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하고 죄에 대한 기억을 사라지게 한다.
5. 악한 마음
악한 마음은 인생에 있어서 모든 죄의 원천이다. 사람들이 죄를 미워하면서도 또 죄를 짓는다. 그처럼 우리가 선행을 원할 때도 악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 악한 성향은 사람의 의지와 심령을 파멸로 이끈다. 또한 그 악한 성향은 죽음의 냄새를 피우며 사람의 도덕성을 완전히 부패시키고 철저히 파괴한다. 그런데 구원은 그런 악한 성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성품을 준다.
6. 사망의 두려움
구원은 사망이란 대적이 가진 최후의 침을 제거한다. 그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 일생을 노예처럼 속박되어 살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장례식을 알리는 조종소리가 얼마나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충격과 공포 자체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는 그런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죽음의 침상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현관문과 같다.
7. 사단의 능력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13). 우리는 질병과 뱀과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존재이다. 사단은 이미 우리의 손에 정복된 대적이다. 어떤 사단의 세력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무너뜨릴 수 없다. 구원은 삶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또한 구원은 영광스러운 햇빛을 삶에 비치게 하고 우리를 압도하는 의기소침과 우울함의 구름도 다 몰아낸다.
8. 영원한 죽음
성도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옥의 족쇄를 풀고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런 곳인가? 그래서 가장 친절한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조차 지옥에 대해 묘사하면서 “그 벌레가 죽지 않고 그 불이 꺼지지 않는다(사 66:245).”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끔찍하고 고통스런 지옥으로부터 구원받게 되었다. 이런 구원의 은혜들을 생각할 때 구원은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구원받은 자의 태도 >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구원받은 자녀들이 믿음으로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며 사는 것을 본다. 심지어는 세상 사람처럼 화를 내고 싸우는 장면도 목격한다. 왜 그런가? 인간의 본능을 아직 떨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구원의 깊은 의미와 감격을 느끼면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도가 갈등과 상처들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 무엇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면 된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구원의 문제이고, 구원으로 인해 나타나는 열매인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얼마나 많이 맺느냐 하는 것이다. 성도는 어떻게 해야 의롭게 살고, 평화롭게 살고, 기쁘게 살 수 있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깊이 인식하면 그 다음부터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런 변화를 통해 가장 복된 삶도 펼쳐지게 된다.
미국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운동이 있다. 그 운동의 이름은 해비타트운동이라고 한다. 그 운동은 밀라드 풀러라는 변호사이자 사업가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나이 28세에 백만장자가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가 이혼선언을 하고 그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말했다. “돈이 전부인줄 아는 당신에게 환멸을 느꼈어요.”
그 사건으로 그는 충격을 받고 진지한 신앙을 찾고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미국 조지아 주의 클래런스 조던 박사가 이끄는 코이노니아 농장을 방문하고 인종을 초월한 공동체적 신앙생활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즉시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자기의 재산을 정리했다. 그리고 자기가 살던 집을 제외한 일체의 재산, 자동차, 보트, 자가용 비행기 모두를 팔아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면서 해비타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운동을 하면서 그는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삶의 참된 가치와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을 받고, 말틴 루터 킹 인도주의 상도 수상했다. 그는 욕심을 버려 하나님을 만났고, 물질을 포기해 행복을 얻었고, 자신을 버려 이웃을 찾고, 쾌락을 버림으로 영향력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가 추구해야 할 삶이다.
구원받은 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은 자이다. 이제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다. 세상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기쁨을 잃은 것도 없고 상처를 받은 것도 없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시니 정말 아쉬울 것이 없는 자이다. 그처럼 구원의 은혜를 인식하고 구원받은 자로서 살 때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다. 그처럼 구원의 은혜를 통해 천국을 맛보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