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말의 여러 가지 징조 >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날짜를 아무도 모르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종말의 징조는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심으로 종말을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종말의 징조에는 어떤 징조들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국화로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성’에 대한 묘사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독립과 회복을 보거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멸망 후 약 1900년을 나라 없이 지내다가 1945년 5월 15일에 극적으로 독립했습니다. 그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진 징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있으려면 이스라엘의 독립 이상의 어떤 징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3장 38-3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이 주님을 거부해서 나라를 잃고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할 때까지는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이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할 때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독립’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전 국가적인 회개의 바람이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회심’이 있어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필요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이스라엘의 독립’ 이상의 ‘이스라엘의 회심’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독립’은 이뤄졌지만 ‘이스라엘의 회심’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지금 시점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점’이지만 ‘임박한 시점’은 아닙니다.
언제 이스라엘에 대 회심의 역사가 생길까요? 로마서 11장 25-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된 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믿기 전까지 이스라엘이 우둔하게 되었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믿으면 이스라엘의 우둔함이 끝나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언제 믿음 안으로 들어올까요? 마태복음 24장 1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즉 열심히 선교해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때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믿음 안으로 들어오는 때이고 그때 이스라엘의 대 회심이 있게 됩니다. 즉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과 ‘이스라엘에 대 회심이 생기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뤄지고 그때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입니다. 결국 ‘세계 선교’와 ‘이스라엘의 대 회심’과 ‘예수님의 재림’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 배교 및 적그리스도의 등장 >
또 하나의 중요한 종말의 징조가 본문에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받고 교인들 사이에 잘못된 종말론 열풍이 불어 동요와 두려움이 생기자 주님의 재림과 휴거의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여러 말들을 듣고 동요하거나 미혹되지 말라고 하면서 사도 바울은 종말의 때에 대한 간략한 말씀을 해 줍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 전에 2가지 징조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기독교를 뿌리로 한 악의 세력이 나타나 배교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로 묘사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신을 어떤 신보다 높은 하나님이라고 내세웁니다(4절). 본문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은 ‘기독교회의 최고 수장이 거하는 교회’란 견해도 있고 ‘다시 복원될 예루살렘 성전’이란 견해도 있습니다. 아마 다시 복원될 예루살렘 성전일 가능성이 큽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 예루살렘은 아랍권에 속한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1967년 6월 6일에 일어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7일에 예루살렘을 점령해 자기 영토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모슬렘의 오말 성전이 있습니다. 언젠가 역사적인 격변이 생겨 오말 성전이 무너지고 그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복원되거나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세워지면 적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 성전에서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어떻게 신격화에 성공합니까? 적그리스도가 활동 초기에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거의 죽게 되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나자 사람들이 “기적이다!”라고 하면서 적그리스도를 신격화할 것입니다(계 13:3).
사도 바울은 그런 종말의 징조를 말하면서 잘못된 종말론에 미혹되어 너무 동요하지 말라고 합니다(5절). 또한 때가 될 때까지는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막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6절). 그 ‘막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략 ‘복음의 역사’ 혹은 ‘성령의 역사’로 보면 됩니다. 즉 사탄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로 그 본격적인 활동이 막아지다가 마침내 대 배교의 때에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내 활동할 것이란 말씀입니다(7절).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마지막 때 잠시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도록 허용합니다. 그때 적그리스도가 공개적으로 나타나 활동하지만 예수님이 입의 기운으로 적그리스도를 죽이시고 재림하심으로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세력이 끝나게 됩니다(8절).
< 표적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
그런 종말의 징조를 언급한 후에 사도 바울은 악한 자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깨닫고 종말의 때를 대비하라고 권면합니다. 악한 자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사탄의 역사를 따라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가지고 나타납니다(9절). 그처럼 사탄이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다가와도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기에 미혹되지 않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사탄의 능력에 자꾸 미혹됩니다(10절).
왜 사람들이 거짓을 믿습니까? 진리를 믿지 않고 사탄의 능력을 쫓아다니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려고 미혹될 만한 것들을 그들에게 보이게 해서 거짓을 믿도록 그냥 놔두신다는 것입니다(11-12절). 이 말씀을 보면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추구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요새 어디에 가면 기적적인 치유가 있다고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 중에는 사탄이 주는 기적도 많습니다. 결국 치유가 믿음의 징표는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치유만 구하며 따라다니는 자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기에 오히려 구원을 못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방 종교에도 치유는 있지만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올 때 참된 목자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기적이 주님보다 앞서면 결코 안 됩니다. 기적을 바라보고 오지 마세요.” 그러면서 잘못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을 물리치고 바른 믿음을 권면해야 비로소 진정한 치유도 얻고 영혼도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바른 메시지를 재미없게 생각하고 다른 표적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시시하게 보여도 주님이 원하는 참된 길을 따라야 천국에도 갈 수 있고 천국의 상급도 클 것입니다. 그런 인기 없는 길이 주님이 직접 가셨던 길이고 주님이 원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신실한 믿음’은 외면하고 ‘치유 자체’만 원합니다. 그처럼 계산적이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치유가 나타나도 사탄의 치유가 됩니다. 마지막 때는 사탄이 치유와 능력과 기적을 보여 줌으로 신앙의 본질을 어지럽히는 공격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탄이 주는 잘못된 기적을 주의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잘못된 표적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리를 믿지 않는 불의한 모습이고 그런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주는 기적에 속지 말고 표적 중심적인 믿음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물론 참된 믿음에는 표적이 따릅니다. 그러나 표적이 신앙의 주가 되면 안 됩니다. 표적의 화려함에 영혼을 팔지 말고 주님을 신실하게 추구할 때 하나님이 진짜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무 그릇보다 금 그릇이 되길 원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릇이든 깨끗한 그릇이 되어 쓰임 받는 것입니다(딤후 2:20-21). 이제 표적만 쫓아다니지 말고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힘쓰고 그 다음 일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최선의 모습으로 그 신실한 믿음에 반응해 주실 것입니다. 항상 신실한 믿음으로 종말의 때를 지혜롭게 대비하고 은혜의 역사를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성경66권 설교파일 중에서 데살로니가후서 5번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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