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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곁에 어떤 제자도 없었는가? 십자가의 죽음이 두려워 다 도망갔기 때문이다. 죽어야 할 때는 예수님의 좌우편에 없고 영광을 받을 때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으려는 것이 문제다. 왜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가? 십자가를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이미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사람이 죄와 율법을 극복하려고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루터도 죄를 이겨보려고 무섭게 사투해도 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존재다. 그 사실에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원리가 담겨 있다. 그 원리를 잊으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전락할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잊고 율법 기준으로만 보면 비참한 존재가 되면서 잠깐은 거룩하게 보일 수 있어도 언젠가는 추한 모습이 드러난다.
남을 볼 때도 율법의 눈으로 보면 단점만 보이고 쉽게 판단하게 되지만 은혜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보면 성도가 다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성도도 죄를 짓지만 그 죄에 대해 큰 아픔을 느낀다. 믿기 전에는 큰 죄를 지어도 죄의식이 없이 오히려 처세술로 여기기도 했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작은 죄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죄는 일시적으로 물질과 쾌락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성도는 죄를 사랑하지 않는다.
성도도 죄를 짓지만 죄에 지배되지는 않는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 로마서 6장에는 “죄에 대해 죽었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죽은 존재로서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죄를 지었다고 “이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라고 여기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죄에 눌린 상태로 불안 가운데 살지 말라. 죄를 깨끗이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라.
한 청년이 군에 있을 때 내무반장인 김 하사가 한밤에 수시로 팬티 바람으로 바깥에 집합시켜 줄빠따를 쳤다. 그때마다 소총을 난사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얼마 후 김 하사의 전역 명령이 떨어졌다. 며칠 후 김 하사가 술 먹고 밤에 소리쳤다. “팬티 바람으로 바깥에 집합!” 그때 새로 내무반장이 된 김 병장이 말했다. “김 하사, 너는 곧 전역하잖아. 까불지 말고 쳐 맞기 전에 가! 얘들아, 편히 자라. 앞으로 너희는 내 말만 들어라.”
성도에게는 율법에 매여 살던 김 하사 시대가 끝나고 은혜 아래 놓인 김 병장 시대가 왔다. 죄와 율법에 매여 남루하게 살지 말라. <거지와 왕자> 이야기를 보면 왕자가 된 거지가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잠자지 못하고 침대 밑에서 잤다. 또한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하게 하자 체질에 안 맞는다고 냇가에서 세수했고 좋은 옷을 입히자 거추장스럽다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다녔다. 그처럼 속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왕자처럼 살아도 거지는 거지이고 거지처럼 살아도 왕자는 왕자다.
성도는 죄인이었다가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아직도 내 모습에 왕자의 인격과 행동과 품위가 없어도 왕자임을 기억하고 묵묵히 자기 자리와 사명을 지키면 조만간 내 삶에 하나님의 영광과 풍성한 축복이 드러난다. 죄는 끈질겨서 중력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 중력 때문에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죽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사뿐히 내려온다. 엘리베이터가 중력의 힘을 이겼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이란 엘리베이터 안에 있으면 죄는 나를 파멸시킬 수 없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잊지 말라.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나의 영광스런 신분에 집중하고 스스로 고백하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의 신부다. 나는 의인으로서 이미 이긴 존재다.” 성도는 죄에 대해 이미 이긴 상태로 죄와 싸우는 존재다. 이미 확정된 승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곧 현실에서도 승리의 역사가 나타난다. - <월간새벽기도> 21년 9월호 내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