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로 돌아가지 말라
한 부잣집 외동딸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 결혼을 못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사랑을 고백했는데 그 고백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이 부자니까 돈을 바라고 저럴 거야.” 그런 의심의 습관화를 주의하라. 순수한 선물과 사랑을 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한 선물과 사랑을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
잘 주는 것보다 잘 받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구원 문제에서도 공짜 구원이라니까 잘 믿지 못할 때가 많기에 루터가 말했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가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의 공로, 자존심, 명예, 의를 완전히 포기해야 구원의 진리를 잘 받을 수 있다. 구원의 복음을 기꺼이 잘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갈라디아 교회에도 인간의 의를 내세운 ‘다른 복음’이 틈탔다.
왜 사람들이 다른 복음에 빠지는가? 아직도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은 인본주의 때문이다. 별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여기고 나의 의를 내세우면 예수님을 믿기 힘들고 믿어도 나의 의가 아직 깨지지 않았기에 참된 은혜를 체험하기 힘들다. 자기 의와 교만이 완전히 깨져 손바닥이 땅에 닿은 후 일어서야 은혜를 깨닫기에 자기 의를 내세운 바리새인의 성향을 가지면 믿기도 힘들고 은혜를 체험하기도 힘들다.
그 사실을 깨닫고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배척하면서 반대 개념을 등장시켰다. 그것이 ‘내가 전한 복음’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다른 복음’과 ‘바른 복음’의 차이가 무엇인가? 다른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고 바른 복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다. 즉 구원에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다른 복음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른 복음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멋대로 행동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행위보다 믿음을 앞세워 살라는 말이다. 그 믿음이 인본주의에 막혀 대 자유를 버리고 옛 사람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에 바울은 답답한 심정으로 “다른 복음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 조나단 시걸은 그를 따르는 갈매기들에게 가르친다. “나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그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버려라.” 한 갈매기가 질문했다. “법과 질서도 버려야 합니까?” 조나단이 대답했다. “참된 법은 참된 자유로 인도하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자유를 누리라.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해 구원받고도 구원받기 전의 습성대로 살지 말라.
많은 성도가 자신에게 영적인 날개가 달려 있어도 창공을 날지 않고 새장 안의 삶을 더 원한다. 그처럼 옛 자아로 돌아가는 모습이 복음을 받았다가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해 대 자유를 얻었음을 잊지 말고 구원받으려고 행위를 보여 주기보다 구원받은 자로서 행위를 보여 주라. 복음을 받았다가 다른 복음으로 빠져들지 말고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고 모든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라. <‘월간새벽기도’ 11월호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