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라
어떻게 외식에서 자신을 지키는가? 첫째,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왜 사람들이 외식에 빠지는가?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양심이 화인 맞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딤전 4:1-2). 쉽게 말하면 외식하는 자는 참된 믿음이 없는 자란 뜻이다. 믿음이란 내용이 없으니까 자꾸 외적인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형식도 필요하지만 믿음이란 내용이 없으면 안 된다.
물론 내용과 형식이 다 필요하다. 외식하지 말라는 말은 형식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을 깨면 내용도 곧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성을 추구할 때 형식과 규칙도 힘써 지켜야 한다. ‘내용이 없는 형식’이 외식으로 흐르듯이 ‘형식을 무시하는 내용’도 아집으로 흘러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형식을 존중하는 것’과 ‘형식만 내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형식을 존중해야 내용도 바르게 형성된다. 그러나 형식을 지나치게 내세우지는 말라.
둘째,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 때 외식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주제는 결혼 및 음식과 관련된 태도였다. 그때 외식하던 사람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다. 독신으로 살거나 금식과 절식을 하면 경건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에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라고 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부간에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면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경건한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지만 그런 사도 바울이 결혼 유무로 경건성의 척도를 삼지 말라고 했다. 또한 어떤 음식을 먹느냐 하는 것으로도 경건성의 척도를 삼지 말라고 했다.
경건성을 보여주는 더욱 귀한 척도들이 많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그리고 감사와 겸손과 같은 귀한 덕목들은 외면하고 “나는 무엇을 먹지 않아!”라고 하면서 경건성을 나타내려고 하면 얼마나 허무한 모습인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식 문제 등에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 원리는 인생 전반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가끔 어려움을 당하면 “왜 이런 고통이 오나?”라는 의문이 들면서 낙심이 될 때도 있지만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것도 버릴 것이 아니다. 살다보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규칙이나 환경을 만나지만 그것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유익할 때가 많다. 심지어는 악인을 통해서도 배울 부분이 있고 나쁜 환경을 통해서도 얻는 것이 있다. 그처럼 주어진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어떤 삶도 잘 소화해서 복된 삶을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한다. 살면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소화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하나님과 은밀하게 교제하면 어려움을 소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생기면서 더욱 거룩해지고 진실해질 수 있다. 사람 앞에서 인정받아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성과 영성의 내용이다.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기도의 하모니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씀은 위에서 성도에게 내려오는 것이고 기도는 아래에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처럼 말씀이란 하행선과 기도란 상행선의 조화가 잘 이뤄질 때 풍성한 축복이 펼쳐지게 된다. 말씀과 기도가 있으면 다른 많은 것들이 자연히 따라온다.
하나님 말씀을 최고로 높이고 그 말씀에 기초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게 만들어야 기도를 많이 해도 시험에 들지 않는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마음이 높아지면 마귀에게 걸려 시험에 들게 된다. 결국 참된 성숙의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때다.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공허하게 된다. 예배 때 손뼉 몇 번 치다가 오는 것이 그런 공허함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다.
요새 능력과 은사를 신기하게 준다는 집회를 찾아서 그것들을 불나방처럼 추구하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능력을 받았다고 초심을 잃고 교만해진다면 차라리 능력을 안 받고 겸손한 것이 낫다. 살면서 너무 외적인 것에 끌리지 말라. 금식기도나 능력이나 은사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된 은밀한 영성은 성도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영성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