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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바라보면 진짜 축복을 주시려고 간혹 안타까운 마음으로 매를 드신다. 그 매에는 “제발 바른길로 들어서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매는 자질 없는 선생이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때리면서 ‘사랑의 매’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은 성도가 바른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때로는 원수를 매질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 원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자녀를 매질하는 도구가 되었던 원수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도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바로잡으려고 다른 나라들을 잠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했는데 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너무 심하게 때린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다.
남을 변화시키고 그의 천성과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자신이 징계의 도구 역할을 하며 그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 그러면 자신이 더욱 아픈 하나님의 치리의 손길을 맛보게 될 수 있다. 남을 지적하는 일에 빠른 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네 모습은 어떠냐? 손 좀 봐야 하겠구나!” 정의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허물을 외면하고 내세우는 지나친 정의감은 주의하라.
어느 날, 한 교회에서 한 정의로운 집사가 장로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입에서 수시로 이런 말이 나왔다. “목사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 결국 교회에 기쁨은 사라지고 근심거리만 넘치게 되었다. 정의감은 사랑과 겸손을 바탕으로 펼쳐질 때 효과가 나타난다. 사랑과 겸손이 없는 정의감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왜 정의에 대한 외침이 많을수록 사회는 더 각박해지고 어두워지고 있는가? ‘사랑의 결핍’때문이다. 정의는 정의로운 사람이 말할 때만 그 의미가 살아난다. 불의한 사람이 정의를 말하면 정의는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 성도는 정의와 사랑의 두 강줄기를 먹고사는 존재이다. 사랑만큼 정의를 가지고 정의만큼 사랑을 가질 때 어둠은 힘을 잃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좋은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으로 정의와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면 문제는 더 얽힌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잠시 정의의 목소리를 낮추라. ‘비판하는 능력’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먼저 훈련받은 존재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쓰임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