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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환상이 넘치게 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충만’이다.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방언이 터졌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조롱했다. “저들이 지금 새 술에 취했구나.” 그때 베드로가 말했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다(행 2:15).” 유대인들에게는 아침 6시가 0시기에 당시 3시는 오늘날의 오전 9시다. 아침부터 무리가 술에 취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유대인은 대개 저녁에 술을 마시기에 오전 9시에 단체로 새 술에 취했다는 조롱은 몰상식한 조롱이란 뜻이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이 술에 취해 생긴 사건이 아닌 말세에 관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했다(행 2:16-21). 요엘 선지자는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했다. 결국 말세를 대비하도록 주신 가장 위대한 징조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먼저 예언의 역사가 나타난다(행 2:17). 성경적인 예언은 점치는 것이나 “물과 관련된 장사를 해야 됩니다.”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무속적인 예언이 아니다. 기독교 예언의 바른 개념은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말씀 안에서 미래를 감지하고 지향하며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한때 점이 유행하며 점치는 학원에 수강생도 넘쳤다. 왜 사람들이 점을 보고 굿을 하는가? 희망이 죽었다는 표식이다. 그러나 성경에 약속된 참된 예언을 들으면 다시 희망과 의욕이 생긴다.
잠언 23장 17-18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복된 예언의 말씀인가? 지금 절망의 자리에 있어도 거기서 무릎 꿇으면 그곳이 희망의 자리가 된다는 것이 참된 예언이다.
어떤 교회에 성도가 줄면서 분위기가 침체될 때 한 집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교인들을 격려했다. “성도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만간 부흥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열심히 자기 말이 이뤄지도록 전도하고 기도하면서 교회 부흥에 애썼다. 그 믿음의 말과 행위를 보시고 마침내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 결국 교회가 부흥했다. 바로 그 집사의 말이 성령의 음성이며 참된 예언자의 음성이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 집사처럼 입술이 거룩하게 붙잡히면서 언어가 바뀐다. 그 바뀐 말이 미래를 좌우한다.
말 자체에는 예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죽겠다!”고 하면 죽는 예언이 되고 “살리라!”고 하면 사는 예언이 될 때가 많다. 왜 초대 교회 때 성령께서 임하실 때 사람의 혀부터 붙잡았는가? 혀가 미래의 인생과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잠언 18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진정 복된 삶을 원하면 먼저 말부터 바꾸라. 성령 충만을 통해 언어가 긍정적으로 변할 때 삶도 변하면서 기적의 역사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