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날의 방언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제자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자 그들의 입술이 성령님에게 붙들려 다른 언어로 말했다. 오순절 날의 방언은 만민이 한 음성으로 주를 찬송하는 천국 삶의 예표로서 성령의 역사는 입술의 붙들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암시다.
성령의 역사와 반대적인 개념의 사건이 바벨탑 사건이다. 그때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다. 그런 교만한 태도로 인해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그때부터 소통이 막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통이 막히면 서로 물어뜯다가 다 망한다. 결국 혀가 멋대로 놀려지는 것은 최대 저주이고 혀가 성령님께 붙잡히는 것은 최대 축복이다.
위의 구절에 언급된 방언의 속성은 무엇인가? 주로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실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이란 견해다. 둘째, 말하는 사람은 한 가지 언어로 말하는데 성령님이 다른 언어로 들리게 한 청취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란 견해다. 셋째,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말을 한 것이란 견해다.
위의 구절 다음에 나오는 8절에 언급된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라는 말씀은 그들이 방언으로 말했다는 뜻보다는 듣는 사람이 자기 나라말로 들었다는 뜻이다. 즉 입이 방언을 한 것이 아니고 귀가 방언을 들은 것이다. 오순절 날의 방언은 성령의 역사로 혀가 붙들려서 듣는 자와 말하는 자의 의사가 소통되는 역사가 이뤄진 방언으로서 고린도전서 14장에 언급된 고린도 교회를 휩쓸었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방언과는 속성이 달랐다.
오순절 날의 방언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실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언이었다. 천사의 방언을 많이 해도 의사소통이 막히면 참된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순절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말씀을 통한 소통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결국 성령충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내마음 속에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오순절 교회란 남의 말이 내 귀에 아름답게 들리고 내 말이 남의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천국 공동체 교회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