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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리나 신경이 필요한가? 한번 결정된 것에 대해 딴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만든 교리가 완벽할 수는 없어도 꼭 필요하다. 반듯한 교리가 없다면 인간 역사가 끝날 때까지 통일된 의견이 나올 수 없다. “내가 이런 체험을 했는데...”라고 하면서 딴소리를 계속하면 성경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어야 하고 그렇게 한 사람의 체험으로 계속 업데이트되면 성경은 더 이상 성경일 수 없다.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성경도 필요하고 확고한 신경도 필요하다. 또한 교리와 신학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영성을 내세우면서 교리를 영성을 막고 성령을 제한하는 걸림돌처럼 여기지만 교리의 목적은 성령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성과 자기 체험을 내세워 자꾸만 말씀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은 완전하지만 성경을 통해 체계를 세운 교리는 불완전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불완전해도 교리는 꼭 필요한 것이고 알아야 한다. 교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방종이 나쁜 것이다.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사명을 가졌다면 그런 사명을 교리 측면에서도 성취하려고 하라. 아무리 뜨거운 믿음을 자랑해도 바른 교리가 없다면 그 뜨거움은 얼마 후에 사라진다. 뜨거운 믿음 뒤를 따라오는 냉철한 교리가 성령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만든다.
< 신학도 필요하다 >
옛날에 필자가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뜨거운 신앙을 자랑하면서 신학 공부를 등한시하는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세상도 정복하려는 판에 왜 교리는 정복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교리 문제에 대한 연구를 신앙이 미지근하다고 하는 보수파 성도들에게 다 빼앗깁니까? 신학과 교리를 무시하면 여러분이 추구하는 믿음과 영성을 오래도록 바르게 지속시킬 수 없습니다.”
그때 영성을 자랑하면서 신앙과 신학을 무시하지 않도록 계속 말했다. “여러분 중에 위대한 신학자도 몇 명은 나와야 합니다. 영성을 자랑하면서 왜 신학은 경시합니까? 신학 영역을 빼앗기고 영성만 자랑하면 남들이 우러러보아 주지 않습니다. 신학이 없는 영성은 신학이 있는 영성으로부터 무시당하고 결국 밀립니다.”
성령충만을 지식층이 아닌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이 받았기에 대중들은 “저들이 새 술에 취했다.”라고 무시했다. 세상이 그런 법이다. 물론 그런 지식적인 상처가 없도록 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신학은 꼭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믿음도 신학의 틀이 없으면 수명이 짧다. 초월성과 내재성이 겸비된 균형 잡힌 믿음을 위해 교회는 위대한 능력자도 배출하면서 위대한 신학자도 배출해야 한다.
위대한 능력자와 위대한 신학자를 겸비해 키우지 못하면 기독교 교회 역사 속에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없다. 치우치지 않는 삶과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나안 땅을 앞두고 하나님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1:7).”라고 하셨다. 가나안의 행복을 선도하는 핵심 요소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는 태도다. 신앙과 신학이 겸비된 균형 잡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복된 인물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