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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리더십의 3대 원천 (사도행전 15장 12-21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6-09-21
사도행전 120편 말씀 중에서 71번째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20편 전체 말씀은 "성경66권설교파일"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71) 절대 리더십의 3대 원천 (사도행전 15장 12-21절)
 < 불일치 속의 일치 >
   
  어느 날, 한 경건한 교인이 몇 년 동안 무인도에서 혼자 살다가 간신히 구출되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곳에서 오래 동안 혼자 산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 지냈어요.” 선장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 오두막집 3개는 뭔가요?” 그가 말했습니다. “첫째 오두막은 제 집이고, 둘째 오두막은 제가 현재 가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셋째 오두막은 제가 전에 다니는 교회입니다.”
   
  요새 교인 중에 ‘전에 다니는 교회’가 없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다양한 시대에 산다는 증거이고, 또한 많은 교인들이 교회 내에서 갈등을 경험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갈등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한 막 태어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도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의 갈등과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나 로마서를 보면 고린도교회나 로마 교회도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 문제, 음식 먹는 문제, 안식일 문제로 교인 간에 불일치가 있었고, 골로새 교회에는 천사 문제, 절기 문제, 절제하는 삶 문제로 불일치가 있었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종말 문제로 불일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사도 바울을 가장 사랑했던 사랑이 넘치는 빌립보 교회에도 여성 리더들 간의 주도권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살다 보면 갈등과 불일치와 이별도 있지만 때로는 그 아픔이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가는 새로운 창조의 서막이 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5장 후반부를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투어 갈라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 분리가 결국은 하나님 사역의 확장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 분리로 인해서 선교 팀은 한 팀에서 두 팀으로 늘었고, 사역자는 바나바와 바울의 2명에서 바나바와 마가, 그리고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의 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바나바 팀은 서쪽의 구브로로 선교를 떠났고, 바울 팀은 북쪽의 소아시아로 선교를 떠남으로 사역지도 한 곳에서 두 곳으로 늘면서 복음 사역이 더욱 힘 있게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롬 8:28). 물론 그런 결과가 싸움과 갈등과 이별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가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역설적으로 분열을 통해 더욱 교회가 확장되었습니다. 그처럼 이별은 아픈 일이지만 이별의 아픔과 상처를 통해서도 은혜가 확장됨을 믿으십시오. 요새도 교회가 가끔 깨지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일을 통해서 더욱 복음이 확장되기도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인생의 최악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새로운 비전을 품고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게 하기도 합니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것도 낭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연기’는 ‘하나님의 거절’이 아니고, 하나님의 우회로는 결코 막다른 골목이 아닙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이고, 믿음 안에서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입니다. 상처와 패배의 자욱한 연기에서 숨이 막혀 신음할 때 비로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얘야!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 이제 나와 함께 새로운 축복의 땅으로 가자! 그곳에는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축복이 많단다. 그곳까지 내가 친히 너를 이끌어 주리라.”
   
  그처럼 하나님은 실패와 상처를 통해 더욱 큰 진보를 이뤄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살면서 갈등과 불일치를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사람은 원래 불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르게 창조하셨고 사람마다 다르게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다양성을 신뢰하십시오.
   
  왜 지나친 세미나 중심주의를 버려야 합니까?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세미나는 샘이 나는 사람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세미나는 획일적인 성공 방법과 기술을 가르쳐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후퇴를 낳는 부작용도 많습니다. 내가 남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남이 걸어간 성공의 길이 내게도 성공의 길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러면서도 항상 사랑으로 일치를 추구하며 그 확신을 지혜롭고 은혜롭게 피력하십시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불일치해도 좋고, 때로는 분리와 이별을 해도 좋고, 필요하다면 서로 다른 길로 가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 없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해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안다고 하셨습니다. 크고 깊고 심각하게 불일치해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어느 날, 두 아이가 싸웠습니다. 부모가 두 아이를 평상 앞에 앉히고 각각 평상의 한쪽 끝에 손을 대고 따라 말하게 했습니다. “나는 옳고 그는 틀립니다.” 그리고 곧 평상의 다른 쪽 끝에 손을 대고 따라 말하게 했습니다. “나는 틀리고 그는 옳습니다.” 그리고 평상의 중간에 두 손을 모으게 하고 따라 말하게 했습니다. “나는 부분적으로 옳고 그도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가 아이들의 손 위에 손을 얹고 따라 말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화해시켰다고 합니다.
   
  앞으로 천국에 가서 이 땅에서 갈등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았을까?” 하고 아쉬워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불일치를 겪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일치를 잘 받아들여 새로운 창조의 도구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불일치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주인공이 되고, 거기에서 진정한 권위와 리더십이 나올 것입니다.
   
  < 리더십의 3대 원천 >
   
  사도행전 15장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회의가 기록된 장면입니다. 그 회의는 상당히 격렬했습니다. 그 회의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방인 출신 신자가 과연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가 주제였습니다. 그 격론에서 유대인 바리새파 출신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다른 문제는 다 양보해도 복음의 기본을 흔드는 그런 주장은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격론 끝에 사도 중에 가장 권위가 있는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 말씀이 본문 앞 7-11절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주 내용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메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회의는 바울과 바나바의 주장이 인정되는 분위기로 흘렀고, 그 다음부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가만히 바나바와 바울로부터 이방인 선교 사역을 할 때 일어난 표적과 기사에 대해서 들었습니다(12절).
   
  그 말을 마치자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회의의 최종결론을 내리는 말씀을 합니다(13-21절). 당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회의의 의장이었는데, 야고보는 결론을 내리면서 베드로의 의견을 상당히 참고했습니다.
   
  본문 14-15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구절에서 ‘시므온’은 베드로의 옛 이름입니다. 야고보가 베드로의 옛 이름을 부른 것은 오래 전부터 아는 대단히 친분이 깊은 사이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말이 선지자들의 말씀과 합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아모스 9장 11절 말씀을 인용해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된 말씀이 구약성경에 예시되어 있음을 언급하고(16-18절), 회의의 최종 결론을 냅니다. 본문 19-2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회의의 최종 결론을 내리면서 다른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바로 “내 의견에는”이라고 하면서 회의를 결론짓는 것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런 절대 권위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가 예수님의 동생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 점도 작용했겠지만 그 사실만으로 야고보의 절대 권위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야고보가 절대 권위를 갖게 되었을까요?
   
  오늘날 성도들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머리만 되면 뭐합니까? 머리가 되어도 리더십이 없으면 자신도 힘들어지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머리의 축복을 위해 참된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참된 리더십은 어디에서 옵니까? 참된 권위에서 옵니다. 참된 권위는 어디에서 올까요? 본문에 나오는 말씀과 야고보의 삶을 통해서 참된 권위의 원천 3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 중심적인 삶
   
  본문을 보면 야고보는 결론을 내릴 때 본문 15절에서 “기록된바”라고 말하며 구약의 아모스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은 그가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고, 또한 말씀을 최대한 존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전한 말씀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쓰는데 야고보서는 신약성경의 어떤 서신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인용된 서신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상당히 중시합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중시해서 아내도 ‘갈라디아’로 불렀습니다. 반면에 야고보서는 행위를 강조했다고 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비하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루터의 잘못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예수! 예수!”를 강조했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도 인용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교회생활에 관한 탁월한 가르침으로 가득 찬 고린도전후서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처음 뵙고 나서 율법적인 메시야 관에 초점을 맞춘 구약의 흐름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재해석하는 영적 탁월성을 발휘해서 복음을 변증한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만 예수님과 직접 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야고보는 그의 편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거의 줄줄이 인용합니다. 어떤 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야고보서의 말씀 중 약 3분의 1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야고보는 주님의 말씀을 확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말씀 중심적인 살고, 말씀을 최대한 존중했고,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야고보의 권위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기에 힘쓰십시오. 아는 것이 힘입니다. 특히 말씀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 큰 힘입니다. 사단도 말씀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문제도 말씀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우울증도 말씀 몇 마디면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덮어놓고 믿지 말고 열심히 펴놓고 믿으십시오. 심화 성경공부에도 참석해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그토록 찾던 진리와 평안과 행복이 거기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의 감동대로 살려고 애써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지혜도 주시고, 권위도 주시고, 리더십도 주실 것입니다.
   
  2. 치우치지 않는 삶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본문에 나오는 그의 어투를 보면 절대로 권위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말씀을 앞세워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라!”고 결론을 내렸고(19절), 동시에 무조건 은혜를 내세우는 지나친 은혜주의도 막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으로서 4가지, 즉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주인 것, 그리고 피를 멀리하도록 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모습입니까? 말씀을 많이 알면 지혜롭게 되고, 지혜롭게 되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온유한 신앙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온유한 신앙을 통해서 야고보는 절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참된 권위와 리더십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하는 주님의 2대 성품인 ‘겸손과 온유’가 있을 때 주어집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절대 권위는 권위적인 태도를 버릴 때 주어집니다.
   
  살다 보면 어디에 가든지 보수파와 진보파가 있습니다. 사람도 성향에 따라 보수적인 사람이 있고 진보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진영에 속해도 좋습니다. 다만 극단에는 치우치지 마십시오. 극단에 치우치면 한 진영에서는 강력한 리더가 될 수 있지만 전체를 포괄하는 권위 있는 리더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진짜 권위 있는 리더가 되려면 본문의 야고보처럼 보수파와 진보파를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참된 리더가 되기를 원하면 자기 스타일을 너무 고집하지도 말고, 더 나아가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누군가의 신앙 유무와 성숙함 유무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남을 잘 판단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판단 받게 됩니다. 그처럼 생각뿐만 아니라 스타일에서도 치우치지 말아야 리더십과 권위의 영향력도 오래 지속됩니다. 리더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것을 품는 통전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0-21절 말씀에서 율법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있는 것처럼, 율법 없는 사람에게는 율법 없는 것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흑백논리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진리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흑백논리가 필요하지만 비본질적인 문제와 삶의 스타일까지 흑백논리에 빠지면 그런 사람은 절대 권위 있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결국 통전적인 통 큰 사람이 참된 권위를 갖게 됩니다.
   
  3. 기도 중심적인 삶
   
  야고보의 절대적인 리더십은 그의 기도생활을 통해서 왔습니다. 본문에는 그런 얘기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주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얼마나 기도를 간절히 많이 했는지 그가 기도하던 곳의 마루 무릎부분이 다 닳아서 푹 팼고,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런 기도생활을 보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쟁쟁한 장로들도 다 그 권위에 무릎을 꿇었고, 심지어는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12제자조차 그 권위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는 권위 있는 리더십과 능력의 제일 원천입니다. 그처럼 기도로 준비하면 때가 되어 마음속의 소원도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시간은 결코 허비된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 시간은 나무를 잘 패기 위해서 도끼날을 가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결정적인 축복의 기회가 와도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역사가 가장 분명히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기도’라는 분야입니다.
   
  모비딕(Moby Dick)이란 소설을 보면 사람들이 포경선을 타고 고래를 좇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모든 선원들은 세찬 바다를 이기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젓습니다. 그런데 갑판에 앉은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구도 그 사람을 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래가 나타나면 결정적인 순간에 작살을 내려 꽂는 작살잡이이기 때문입니다. 작살잡이는 오랫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때가 되면 가장 생산적인 사람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작살잡이와 같고, 기도하는 손은 작살을 든 팔과 같습니다. 그처럼 기도는 결정적인 때에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보통 때는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의미 없는 사람과 같고, 기도 시간이 별로 의미 없는 시간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비상시에는 힘과 능력의 원천이 되고 리더에게는 권위의 원천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가 없는 인생은 결코 능력 있는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기도하는 일꾼이 되십시오. 기독교는 기도교입니다. 신앙생활의 요체는 기도생활입니다.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고, 시급한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그러면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정말 예수 믿고 인물이 되고, 머리가 되는 축복을 얻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먼저 리더십을 체득해야 하는데, 그런 체득된 리더십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권위가 생깁니다. 기도하면 행복해지고,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납니다.
   
  < 기도는 변화를 선도합니다 >

   
  기도에는 외상이 없습니다. 기도는 선한 변화의 제일 원천입니다.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치유의 가능성도 현저하게 높아지고 생각을 초월한 기적도 많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신기하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합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수시로 체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더 많이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그런 우연의 일치도 더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2주 전에 정태은 집사님 골프장 오픈 예배를 드리려고 갔습니다. 저는 오픈예배를 드리면 그 사업장에 꼭 필요한 말씀을 달라고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그때도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거대한 골프장 오픈예배를 드릴 때 중요한 손님도 많이 올 텐데 그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세요.” 그런데 그 2주 전 월요일 새벽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오픈예배 때 전할 말씀을 무서울 정도로 폭포수처럼 순식간에 다 주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가끔 어떤 때는 성령님이 폭포수처럼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때는 2시간에 원고지 50매까지 쉬지 않고 써냅니다. 그때도 그렇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오픈예배 날을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오픈예배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픈예배를 야외에서 하는데 지금 비가 옵니다. 비가 그치게 해주세요.” 다행히 큰 비는 그쳤지만 계속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11시 오픈예배 시간이 오락가락하는 비로 조금 늦춰졌습니다. 그런데 계속 늦출 수 없어서 20분쯤 지나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할 때 또 빗줄기가 약간 굵어졌습니다.
   
  그때 찬송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예배가 은혜롭게 무사히 진행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제가 지금 입은 양복은 제가 예배 때만 입는 제일 좋아하는 양복인 것을 아시지요? 이제 비를 많이 맞으면 이 양복도 버리게 됩니다. 이 양복도 버리지 않고 오픈예배도 망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찬송가 3절이 끝나니까 비가 딱 그쳐서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그런 ‘우연의 일치’가 많아집니다. 그처럼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요새 기술과 자본과 인맥이 힘인 줄 알지만 진짜 힘의 원천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기도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손이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기도는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고, 자신을 깊이 있게 만들고, 자신을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게 만들고, 자신에게 새로운 비전과 도전을 줍니다. 그처럼 기도로 변화된 사람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능력과 권위를 얻고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성경66권 설교파일 중에서 사도행전 71번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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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복된 아내의 4대 성품 (베드로전서 3장 1-6절) 요삼일육선교회 5838 2018.07.04
102 구원의 6가지 명칭과 의미 (로마서 10장 5-10절) 미션퍼블릭 7244 2018.05.30
101 최선의 변화를 이뤄내는 길 (요한복음 1장 9-13절) 미션퍼블릭 7656 2018.04.25
100 승리하는 교회생활의 원리 (에베소서 2장 19-22절) 미션퍼블릭 7699 2018.03.28
99 대 자유의 은혜 체험 (골로새서 1장 18-23절) 미션퍼블릭 5703 2018.02.28
98 복음의 원리 (로마서 1장 2-7절) 미션퍼블릭 6518 2018.01.31
97 눈물의 힘과 의미 (시편 6편 1-10절) 미션퍼블릭 8994 2018.01.03
96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린 삶 (디모데후서 1장 6-10절)  미션퍼블릭 7958 2017.12.06
95 합심 기도의 능력 (디모데전서 2장 5-8절) 미션퍼블릭 7921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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