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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쉐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은 끊임없이 남극을 추구했다. 그는 1902년에 로버트 스콧(Robert Scott) 대장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의 일원으로 남극 643킬로미터까지 접근했다. 1909년에는 썰매로 당시 기록인 남극 156킬로미터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식량 부족으로 돌아와야 했다.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Amundsen)이 최초로 남극 정복에 성공하자 쉐클턴은 더 원대한 계획을 세워 1914년 3200킬로미터에 달하는 웨델 해(Weddell Sea)에서 맥머도 해협(McMurdo Sound)까지 남극 대륙 횡단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와 27명의 대원들이 탄 배는 웨델 해의 두꺼운 유빙에 10달 동안 갇혔다가 침몰했다.
배에서 탈출해 5개월 동안 유빙 위에서 표류하다가 간신히 엘리펀트 섬(Elephant Island)에 도착했지만 추위와 굶주림으로 살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쉐클턴은 절망하지 않고 전 대원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곧 4명의 대원과 함께 6미터가 조금 넘는 소형 선박을 타고 풍랑이 거친 바다에서 약 1290킬로미터에 달하는 죽음의 항해를 한 끝에 사우스조지아(South Georgia) 섬까지 16일 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섬 반대편의 스트롬니스(Stromness)에 있는 고래잡이 캠프까지 가려면 다시 만년설로 덮인 고봉을 등정해 넘어야 했다. 그 길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었지만 쉐클턴은 2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 죽음의 길로 떠났다. 마침내 1916년 5월 20일 그들이 캠프에 도착했을 때 1914년 이후로 아무 소식이 없어서 다 죽은 줄 알았던 노르웨이 고래잡이 선원들은 그들이 유령인 줄 알았다.
결국 쉐클턴은 죽음의 길을 뚫고 3개월 보름 만에 예인선을 끌고 가서 엘리펀트 섬에 남은 전 대원들을 모두 구조했다. 이 이야기는 희망과 용기와 인내의 소중함을 일깨운 세계 탐험사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록되고 있다.
죽는 길에서도 사는 길은 있다. 나 하나라도 희망을 가지고 일어설 때 길은 열린다. 나 하나가 절망의 틈새가 되기도 하고 나 하나가 희망의 요새가 되기도 한다. 남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마음속의 절망이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문제다. 내 안에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때 내 밖에서 고통이 형통으로 바뀐다. ‘꿈꾸는 나’가 ‘꿈같은 일’을 만든다.
세상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다. 가장 부요한 사람은 최상의 보물인 희망을 가진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할 때 희망이 있다고 일어서는 사람에게 결국 승리의 기회는 찾아온다.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을 때가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손에 일을 잡을 때다. 최악의 상황을 만날 때가 최선의 희망을 가질 때다. 나쁜 일은 반드시 좋은 일과 잇닿아 있다. 절망의 극한점이 바로 희망의 출발점이다.이한규의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희망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