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눠주라
< 더 나눠주라 >
계속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2절).” 주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을 마치 “바보 같다!”는 말처럼 사용한다. 안타까운 세태다.
어느 날, 4살짜리 꼬마가 장난감 차를 타며 재밌게 놀 때 한 욕심쟁이 꼬마가 막무가내로 자기도 그 차에 태워달라고 했다. 그때 4살짜리 꼬마가 떼를 부리는 아이에게 차를 양보했다. 그런 대견한 모습을 보면 크게 칭찬해야 하는데 어떤 부모는 말한다. “이 바보야! 너는 왜 바보처럼 맨날 뺏기니.” 어리석은 부모다. 바른 행동을 바보 행동으로 보는 사람이 바보다.
어느 날, 아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아빠가 비상금을 주며 당부했다. “얘야! 이 비상금은 꼭 필요할 때만 써라!” 그런데 아들이 그 비상금을 다 썼다. 아빠가 무슨 급한 일이 있었냐고 묻자 친구들과 식당에 갔는데 지갑을 가져온 친구가 없어서 그 비상금을 썼다고 아들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빠! 잘했지요?” 그때 아빠가 말했다. “얘야! 너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래?”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본문 42절을 보고 자신보다 아들이 더 성경적으로 사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 더 나눠주신다. 줄 줄 모르면 받지도 못한다. 성경의 위인들을 보면 여러 약점은 많았지만 이기주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성경에 나오는 그의 삶을 보면 그는 나눔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누면서 오히려 거부가 되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 세 나그네가 나타났다. 그 때가 정오쯤인데 아브라함은 “이 더운 날씨에 왜 저렇게 다니나?”하고 냉소하지 않고 그들을 힘써 대접했다. 나중에 보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이었다. 그에 대해 히브리서 13장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힘써 누군가를 대접하면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축복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운 사람도 너무 미워하지 말라. 요새는 미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도 까닭 없이 미워하는 편견의 시대다. A에게 당했다고 A가 속한 인종, 지역, 출신, 국가, 성별, 직급, 계층, 피부색까지도 도매 급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을 자세히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깊은 사회적인 열등감이 있고 자신이 사기를 치면서 남을 사기꾼이라고 하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가장 편견이 없어야 할 목사조차 그런 편견을 무심코 노출해서 교회에서 내몰린 경우도 많다. 선교사는 더 편견이 없어야 한다. ‘선교’란 개념 자체가 ‘편견’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선교사가 대화중에 무심코 지역색과 인종색을 노출해 선교사의 기본 자질이 없다고 물질적인 후원이 끊긴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자신이 먼저 편견을 드러내어 순수한 성도의 마음에 상처준 것을 회개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깊은 편견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사람은 그만큼 철들기가 어렵다. 사람을 볼 때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라. 하나님이 많이 사랑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뚜렷한 이유 없이 판단하지 말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힘써 나눠야 한다. 특히 축복과 칭찬의 말을 많이 해주라. 축복과 칭찬의 말을 많이 해주는 것은 축복을 맡겨두는 것과 같다. 때가 되면 그 이상의 축복을 도로 찾아 쓰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