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아는 한 사람의 중요성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노나라의 한 마을에 가난한 여자가 하나 살았습니다. 그때 이웃 제나라에서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그 마을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피난을 떠나는데 한 아이는 품에 안고 한 아이는 손목을 잡고 피난을 갔습니다. 그런데 제나라 병사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자 더 이상 두 아이를 데리고 도망칠 수 없어서 한 아이를 버리기로 작정하고 품에 안은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붙잡혔습니다.
아이를 버리는 것을 본 제나라 장수가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왜 품에 안은 아이는 버리고, 손으로 잡은 아이만 데리고 도망쳤는가?” 그러자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품에 안은 아이는 내 아이고, 손으로 잡은 아이는 형님의 아이입니다. 나는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내 아이를 택하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 아이를 택하는 것은 <공적인 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내 아이를 택한다면 나는 좋겠지만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되겠으며 우리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이야기가 장수의 입을 통해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의를 아는 사람이 있는 나라는 쳐들어갈 수 없다.” 그리고 제나라 왕은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느 때 망했습니까? 경제가 중요한 것 같지만 가난해서 망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잘사는 것이 때로 반갑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별로 잘 살지도 못하면서 우리나라가 이 모양인데 다른 준비 없이 더 잘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는 도덕성입니다. 문제는 의(義)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아는 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경제, 번영, 민주, 자유 등이 하나님의 눈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한 사람, 진실한 한 사람, 의로운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축복의 길을 여십니다.
의를 아는 한 사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고, 여러분들이 그런 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호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십시오.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