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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18-09-12
신명기 12-19장
10/01(월) 신명기(53) 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1) (신 12:15-28)
10/02(화) 신명기(54) 당대와 후대가 복 받는 길(2) (신 12:15-28)
10/03(수) 신명기(55)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는 길 (신 12:29-32)
10/04(목) 신명기(56) 사이비를 주의하라(1) (신 13:1-5)
10/05(금) 신명기(57) 사이비를 주의하라(2) (신 13:1-5)
10/06(토) 신명기(58) 우상숭배를 막는 길 (신 13:6-18)

10/08(월) 신명기(59) 성민답게 사는 길 (신 14:1-2)
10/09(화) 신명기(60) 생명을 존중하라 (신 14:3-21)
10/10(수) 신명기(61)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 (신 14:22-29)
10/11(목) 신명기(62) 빚 문제와 관련된 규례 (신 15:1-11)
10/12(금) 신명기(63) 히브리 노예제도 규례 (신 15:12-18)
10/13(토) 신명기(64) 히브리 제사제도 규례 (신 15:19-23)

10/15(월) 신명기(65) 유월절 제도 규례 (신 16:1-8)
10/16(화) 신명기(66)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 (신 16:9-12)
10/17(수) 신명기(67) 복된 가문을 만드는 길 (신 16:13-17)
10/18(목) 신명기(68) 히브리 재판제도 규례 (신 16:18-22)
10/19(금) 신명기(69) 하나님이 악하게 보는 것 (신 17:1-7)
10/20(토) 신명기(70) 재판과 관련된 추가 규례 (신 17:8-13)

10/22(월) 신명기(71) 왕에게 요구되는 6대 규범(1) (신 17:14-20)
10/23(화) 신명기(72) 왕에게 요구되는 6대 규범(2) (신 17:14-20)
10/24(수) 신명기(73) 사람에게 구걸하지 말라(1) (신 18:1-8)
10/25(목) 신명기(74) 사람에게 구걸하지 말라(2) (신 18:1-8)
10/26(금) 신명기(75)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 (신 18:9-14)
10/27(토) 신명기(76)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 (신 18:15-22)

10/29(월) 신명기(77) 은혜를 남용하지 말라(1) (신 19:1-13)
10/30(화) 신명기(78) 은혜를 남용하지 말라(2) (신 19:1-13)
10/31(수) 신명기(79) 악을 선으로 갚으라 (신 19:14-21)
마중물 : 지혜로운 사람
 < 성경 원리대로 표현하라 >
   
  한 대학교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특별한 친화력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 친화력으로 대학 때 총학생회장까지 했다. 친화력이 있지만 자기 논리가 전혀 없는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했기에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배려하는 논리와 철학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기득권 계층의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의 말도 잘 인정해주면서 대화하니까 사람들이 다 친근감을 느꼈다. 목사들도 한결같이 그를 좋아했다. 동료 교수들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최고였다.
   
  지난 2월에 필자의 첫째 딸 대학 졸업식에 갔을 때 그 교수에게 멀리서 졸업생 가운을 입은 여대생이 “교수님!” 하면서 달려와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그 교수의 품에 안겨 허그를 했다. 평소에 얼마나 학생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는지 그 장면이 잘 말해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 그 교수의 아내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그 교수는 평소에도 학생과 가벼운 격려의 스킨십을 잘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필자도 흐뭇하게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언뜻 “누군가 저 상황을 왜곡해 소문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화력이 좋고 인격적이기에 교수들 사이에 그를 총장으로 미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때 반대파가 “그 교수는 학생과 스킨십이 지나쳐.”라는 말을 은근히 흘릴 때 그를 잘 아는 동료 교수나 학생은 가볍게 웃어넘기겠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은 손버릇이 나쁜 고약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해 들은 말 중에는 신뢰가 안 가는 말도 많다. 전달 과정에서 혹은 전달자의 호불호를 통해 말은 현장 분위기나 실제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왜곡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친밀감의 표현이 혐오스러운 고약한 행동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잘못된 풍문도 많다. 풍문을 자기가 확신화해서 이웃에게 전하는 것은 남의 인격을 살해하는 큰 죄다. 사람의 법은 그 죄를 묻지 못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신다.
   
  필자는 뉴욕의 얼라이언스 신대원에서 공부할 때 뉴욕의 한인 장로교회에서 만 2년간 중고등부 전도사를 했다. 목회자 세계에서 서로를 잘 알면 실망할 일도 생기지만 당시 담임목사는 필자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인격적이고 따뜻한 목회자였다. 다만 성공적인 목회는 못했다. 교회 시설과 입지는 좋아도 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니까 당시 일부 교인은 담임목사의 조기 은퇴나 사임을 바라며 비판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비판 중 하나가 목회자의 허그에 대한 비판이었다. 담임목사는 예배 후 교인들과 허그를 했다. 당시에 젊은 필자도 허그를 어색해했는데 담임목사는 자연스럽게 했다. 그런 따뜻한 애정 표현도 교회를 떠난 사람은 가십거리로 만들었다. 그 가십을 듣고 제3자가 “그분에게는 떨어져있는 게 좋아. 허그당해.”라고 하면 앞뒤 맥락을 잘라버린 험담이 된다. 상황을 잘 모르는 험담은 전하지 않는 것이 좋고 그런 말은 듣는 것도 주의해 들으라.
   
  요새 한 장로교 원로목사 부부와 종종 만나 교제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지고 좋은 대화를 하면 즐겁다. 만 20년을 분당에서 교제하며 지켜봤는데 진실함이 한결같다. 바르게 목회하다가 모범적으로 은퇴한 인격적이고 따뜻하고 헌신적인 목회자이기에 교제하면 행복하니까 교단을 초월해 가장 가까이하고 있다. 그 원로목사도 허그하는 것이 몸에 배여 필자는 물론 필자 아내와도 만나고 헤어질 때 허그한다.
   
  문제는 아무리 따뜻하고 인격적으로 목회해도 교회를 떠나는 교인은 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원로목사가 목회하던 교회도 작지 않았기에 떠나는 교인이 당연히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만약 떠난 교인이 은근히 전하는 허그에 대한 가십을 듣고 상황의 맥락도 모른 채 “그분은 여자만 보면 허그해.”라는 식의 풍문을 한 단계 증폭해 전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격자를 추한 늙은이로 만들어 매도한다면 법으로는 죄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큰 죄로 보신다.
   
  거짓말도 주의해야 하지만 거짓 증거는 더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 댓글을 통해 남의 사생활에 대해 실제 상황과 맥락도 모르면서 마치 확신하듯이 익명으로 개인의 인격을 난도질하는 것은 교만하고 비겁한 모습이다. 인터넷 댓글은 깨우침을 주는 지식의 보고도 되지만 인격을 살해하는 흉기도 될 수 있다. 악성 댓글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아니라 ‘악의적인 거짓 증언’이다. 나의 인터넷 댓글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처럼 여기고 성경 원리대로 표현하려는 태도가 지혜롭고 복된 태도다.
   
  < 땀과 정직을 앞세우라 >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의 기초 위에 지혜로운 삶도 더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 집을 세우는 사람이다(잠 14:1). 집을 세운다는 말은 가족을 세워준다는 뜻도 포함한다. 가족은 서로 섬겨주고 인정해주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하나님 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하는 존재다. 가족이 내 사랑을 먹고 배부르게 하라. 남에게 예의를 지키고 잘하는 것 이상으로 가족에게 잘하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되겠는가?
   
  한 젊은 아내가 암으로 죽으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평생 목숨 바쳐 사랑한 남자가 셋 있었어요.” 남편이 심각해지자 아내가 말했다. “첫째 남자는 어릴 때 이웃집 오빠였고, 둘째 남자는 대학 선배였고, 셋째 남자는 당신이에요.” 세 남자가 다 그 남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아내가 죽어도 오래 생각날 것이다. 늘 제 자리를 지키면서 세상의 다른 공동체를 세우기 전에 자기 집부터 세우라.
   
  집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땀이다. 땀을 흘릴 줄 알아야 많은 것을 얻는다. 냄새나는 일이나 환경도 거부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이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더럽고 힘든 일도 과감히 선택해야 복을 받는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볼품없는 직장을 선택해 일으키는 꿈도 꾸면서 소수가 가는 길을 선택해 다수가 가는 길로 만드는 멋진 삶을 살라. 즐거움을 많이 누리기보다 책임을 많이 지려는 인생이 결국 성공한다.
   
  필자가 대학 졸업 후 처음 취직했을 때 출근 전날에 중학교 은사 선생님이 3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매일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하라. 둘째, 뒤에서 직장동료 험담을 하지 말라. 셋째, 기타를 잘 치니까 가끔 음악으로 분위기를 살리라.” 그중에 첫째 권고는 철저히 지켜서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하고 2시간 늦게 퇴근했다. 또한 어렵고 힘든 일도 회피하지 않고 맡아서 밤새 일할 때도 꽤 많았다. 인정받아 성공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능력도 부족한데 회사에서 많은 월급을 주는 것이 감사했기 때문이다.
   
  어렵고 궂은일을 회피하지 말고 부지런히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라. 괴테는 게으른 사람이 가장 추하다고 했다.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가 맡겠다는 자세로 임하는 복된 사람이 되라. 소를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들고 먹을 것도 많이 준비해야 하고 냄새도 나고 더럽지만 그래도 소가 있어야 유익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힘써 맡은 일을 감당해야 영혼에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도 소리 없이 쌓인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땀과 더불어 정직한 행동도 필요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언행일치의 삶도 중요하지만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은 더 중요하다. 성도는 자기 믿음을 불신자들에게 진실한 행동으로 보여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키려고 해야 하고 좋은 의도로 하는 백색 거짓말도 최대한 삼가야 한다. 가장 삼가야 할 것은 거짓 증언이다.
   
  재판에서 증인의 증언은 목숨이 달린 재판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고대에는 거짓 증언으로 억울하게 돌에 맞아 죽기도 했다. 희생자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사탄은 거짓의 원조이기에 거짓 증언은 가장 사탄적인 것이다. 중세에서도 종교 재판에서 거짓 증인이 “저 사람 마녀예요.”라고 하면 보통 사람도 마녀가 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거짓 증언은 나를 속이고 남도 죽이는 이중적인 최악의 죄다. 왜 거짓 증언을 하는가? 그 악한 결과가 자기에게도 미쳐 최종적으로 자기의 길과 행복을 막는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요즘 거짓 피해자나 과장 피해자 때문에 오히려 피해보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차가 약간 부딪혀 상대가 비틀거리니까 “저 사람 쇼가 심하네.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몰라. 큰일 나겠다.”고 여기고 자기도 픽 쓰러졌다고 한다. 그런 쇼잉 후에 ‘진단서, 합의’라는 말이 나온다. 비겁하고 거짓된 삶이다. 그런 쇼맨을 보면 보험사 직원은 인간 이하로 보고 그냥 합의해준다.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일은 사람이 할 일도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도 멀어지면서 더 많은 것을 잃는다. 정직하게 행동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 겸손한 말로 자기를 지키라 >
   
  지혜로운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중요한 말을 할 때는 말하기 전에 스스로 3가지 질문을 하라. 첫째, “그 말은 진실한 말인가?”란 질문이다. 둘째, “그 말은 필요한 말인가?”란 질문이다. 셋째, “그 말은 친절한 말인가?”란 질문이다. 말씀을 실제 삶으로 충실히 옮기는 ‘위대한 번역자, 작은 목자, 생활 성경’이 되라. 크고 위대한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믿음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작은 실천은 결코 헛되지 않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둔다.
   
  교만한 자에게는 지혜가 머물지 않고 교만한 자의 말은 참고할 지식이 없기에 그의 말은 특별히 귀담아듣지 말라. 더 나아가 교만하고 미련한 자에게서는 떠나는 것이 좋다(잠 14:7). 좋은 사람을 잘 분별해서 가까이하는 것도 복이다. 공동체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라고 한다. 더 나아가 미칠 정도로 힘들게 하는 사람은 ‘크레이지 메이커(crazy maker)’라고 한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7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요구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작은 히틀러’다. 남을 통제하려고 하고 소심하게 만들고 대화를 주도한다. 시간, 일정, 프로그램을 자기 맘대로 밀어붙이는 선수다.
   
  둘째, 비판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인간 족집게’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계속 집어내고 지적하고 까다롭게 굴면서 늘 무엇인가를 더 원한다.
   
  셋째, 주장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인간 확성기’다. 소리가 크고 많으니까 귀가 멀 정도다. 남이 “그래. 졌다.”라는 말을 할 때까지 계속 논쟁하고 악을 쓴다.
   
  넷째, 분노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인간 활화산’이다. 언제 화산재와 용암이 덮칠지 모른다. 사소한 일로 쉽게 화를 내서 분위기를 깨고 그동안 세웠던 것을 무너뜨린다. 의로운 분노는 필요하지만 수시로 내는 감정적인 분노는 수시로 공동체에 재난을 일으킨다.
   
  다섯째,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성인 어린이’다. 철이 들고 성숙해진 사람이 되었다는 표시는 감사가 많은 사람인가로 대개 판별된다. 성인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우는 어린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 행복할 수 없다.
   
  여섯째, 무례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행동하는 욕쟁이’다. 예의가 없는 것은 죄가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큰 죄다. 교만 언저리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무례하다, 건방지다, 당돌하다, 욕을 잘한다’는 말을 가급적 듣지 않도록 하라. 말로 하는 욕도 삼가야 하지만 행동으로 하는 욕인 무례도 삼가라.
   
  일곱째, 교만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작은 루시퍼’다. 교만 죄는 사탄의 속성을 가장 많이 닮은 최악의 죄다. 성도가 가장 듣지 말아야 할 말도 ‘교만하다’는 말이고 남에 대해 가장 조심스럽게 써야 할 말도 ‘교만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남에게 ‘교만하다’는 말을 쉽게 쓰는 사람을 교만하게 보실 때가 많다. 요구, 비판, 주장, 분노, 불만, 무례가 많은 것은 다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늘 겸손한 언행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하라.
   
  < 늘 정의의 편에 서라 >
   
  사람이 슬기롭고 지혜롭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다(잠 14:8). 자기의 길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직이 중요하다. 결국 정직이 길이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땀을 흘리며 나아가면 길은 열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떤 족집게 예언자보다 더 자기 길을 잘 아는 인생이다. 하나님이 내 길을 아신다고 믿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면서 환경이나 남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말라.
   
  살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늘 있다. 그로 인해 너무 힘들어하거나 기분 상하지 말라. 그의 무례한 언행에 크게 영향받지 말라. 그런 언행은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나타낼 뿐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즉 나에 대한 그의 말은 나를 잘 묘사한 말이 아니라 그의 무례함과 비정상을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그 말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남이 걸어오는 논쟁 시험이나 논쟁 게임에 빠져들지 말라. 내가 환상적이고 기발한 이론으로 그를 완전히 설복시킬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논쟁이 습관화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정말 고마웠어요. 저를 설득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논리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설복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좋아하지 않는 논쟁자를 좋아하게 만들기는 힘들다.
   
  예수님은 반대자들과 논쟁하고 싸우시지 않았다. 예수님의 허물을 찾으려는 ‘반대로 동기화된 사람들’과의 논쟁은 시간 낭비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험 게임에 말려들지 않았고 빌라도의 질문에도 침묵하셨다. 사람마다 반대하고 공격하는 이유가 다 있다. 잘못된 편견도 자기 논리가 다 있다. 그렇게 반대로 동기화된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논쟁할 필요가 없다. 편견을 가진 사람을 논리로 설득시키려고 하지 말라. 종알종알 말을 많이 해서 편견을 가진 사람을 그의 사고에서 탈출시킬 수 없다.
   
  사도 바울에게도 수많은 논쟁 시험이 다가왔지만 그것에 말려들지 않았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논쟁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면 논쟁을 더 일으킨다. 그런 논쟁에 빠져들지 말고 특히 인터넷 논쟁에는 더 빠져들지 말라. 익명으로 표출된 인터넷 댓글을 통해 익명의 사람과 논쟁 상황에 빠져드는 것처럼 시간 낭비는 없다.
   
  어떤 사람이나 현실이나 환경이 내 삶을 조종하게 하지 말라. 남이 나를 조종하게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을 많은 성도들이 사랑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가 맘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을 수동적으로 방치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착한 성도를 ‘문간에 깔아놓은 신발닦개’인 도어매트(doormat)처럼 취급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도어매트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용서도 도어매트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 용서와 신뢰는 다르다. 용서는 즉시 가능해도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이 술주정을 해서 아내가 집에서 쫓아냈다. 한참 후 남편이 돌아와서 “여보! 용서해줘요.”라고 하면 바로 용서할 수 있다. 그 용서를 받고 남편이 “이제 나를 집으로 받아줘요.”라고 하면 그때는 즉시 받아주지 않고 “노!”라고 한다. 아직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서와 신뢰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그 시간에 참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목사가 성적인 잘못을 범했다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는 바로 할 수 있다. 그러면 용서했기에 다시 담임목사로 바로 모실 수 있는가? 아니다. 일정한 회복 단계와 과정이 필요하다. 용서해주는 것은 바로 되지만 신뢰해주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단호하게 불의한 상황을 거절해야 참된 의와 복이 펼쳐진다.
   
  그런 단호함을 보면 어떤 사람은 따진다. “목사님! 믿는 사람은 온유해야 하지 않나요?” 물론 온유해야 한다. 그러나 온유한 것(meek)은 유약한 것(weak)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온유함의 헬라어 원어는 ‘훈련된 온유’를 뜻한다. 그런 온유함은 사실상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강하게 훈련된 온유함을 가지라. 온유함이란 도어매트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도록 훈련된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불의한 공격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불의가 승리하게 하지 말라. 늘 좋은 편과 정의의 편에 서라. 남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무례하게 굴어도 나이스하게 대하라. 나를 이유 없이 비난해도 그냥 놔두라. 남이 나를 시험 게임에 빠져들게 해도 내가 빠져들지 않으면 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남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바꾸지 않게 하는 것은 내 선택이다. 남이 나를 컨트롤하게 하지 말고 내가 나를 말씀에 따라 컨트롤되게 하라.
   
  로마서 12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논쟁자는 멀리하더라도 진심으로 축복해주라. 사랑스러운 사람을 축복하는 것은 쉽다. 진짜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도 축복하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잠 16:7). 늘 하나님 편에서 바른길을 가면서 원수도 감동시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2018년 9월 10일 (월새기 영어판 D-356)
  이한규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월간 새벽기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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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2 이달의 월새기 삶의 광풍을 잠재우는 길 (마가복음 4장 35-41절) 요삼일육선교회 81 2024.04.20
10791 온라인새벽기도 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된다 (시편 50편 16-23절) 요삼일육선교회 89 2024.04.19
10790 이달의 월새기 복과 행복을 나누라 (마가복음 4장 30-34절) 요삼일육선교회 66 2024.04.19
10789 담안편지 담안편지(899) - 감사합니다 하나님! 요삼일육선교회 47 2024.04.19
10788 이달의 월새기 열매 맺는 믿음의 원리 (마가복음 4장 26-29절) 요삼일육선교회 103 2024.04.18
10787 온라인새벽기도 범사에 감사하라 (시편 50편 14-15절) 요삼일육선교회 114 2024.04.18
10786 온라인새벽기도 부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49편 6-15절) 요삼일육선교회 136 2024.04.17
10785 이달의 월새기 영적인 부를 얻는 길 (마가복음 4장 21-25절) 요삼일육선교회 109 2024.04.17
10784 시/그림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 16일자 본문〉 중에서 발췌 요삼일육선교회 71 2024.04.17
10783 선교소식 월간새벽기도 24년 5월호 선교소식 : <월간새벽기도> 기도 편지 요삼일육선교회 71 2024.04.17
10782 월새기 발간 모음 2024년 5월호 요삼일육선교회 64 2024.04.17
10781 이달의 월새기 네 종류의 마음 밭 (마가복음 4장 10-20절) 요삼일육선교회 122 2024.04.16
10780 온라인새벽기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시편 48편 8-14절) 요삼일육선교회 133 2024.04.16
10779 대표기도 주일예배 대표기도 (전정복집사) 요삼일육선교회 95 2024.04.15
10778 주일설교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7 2024.04.15
10777 온라인새벽기도 십자가를 지는 삶의 복 (마가복음 10장 28-31절) 요삼일육선교회 537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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