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2) (이사야 6장 1-8절)
4. 언어가 정결한 사람
이사야가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어떤 말을 하는가? 본문 5절 후반부를 보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는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자 스랍 천사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날아와 이사야의 입에 대고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해졌다.”고 말했다(6-7절).
하나님은 입술이 정결한 사람을 쓰신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말이 좋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 중 가장 쓰지 말아야 할 말은 “죽겠네.”라는 말이다. “추워죽겠다. 무서워죽겠다. 힘들어죽겠다.”는 말은 당연히 쓰지 말아야 하지만 “기뻐죽겠다. 좋아죽겠다.”는 말도 쓰지 말라.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기운을 전달해 부정적인 성격을 만들고 결국 부정적인 인생을 만든다.
성령충만해지면 가장 먼저 말부터 변한다. 초대교회에서 성령님이 임할 때 교인들의 입술이 붙잡혀 방언이 나오게 되었다. 그때 성령이 임함으로 다른 방언을 하게 된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다른 방언이란 ‘못 알아듣는 말, 신비한 천국 말’이란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뜻이 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고 ‘다른 나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말’을 하게 되었다는 뜻도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지금은 성령님이 말씀을 통해 영혼을 인도하고 평안도 주신다. 말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말로 말씀화할 때 그 말을 통해 능력과 행복과 성공도 주어진다. 말과 말씀은 다르다. 성령의 감동에 의한 믿음의 말은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는 표현은 “믿음의 말은 현실 속에서 실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좋은 인생이 되기를 원하면 먼저 말을 바꾸라. 말을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 말은 각종 저주와 질병도 물리치게 한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이 믿음의 말로 이뤄졌다. 좋은 말의 토로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표식이고 나쁜 말의 토로는 영적으로 죽은 표식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말을 할 때 그 말한 대로 축복해주신다. 성도의 말은 존재 이유를 나타내는 표식임과 동시에 창조적이고 예언적인 능력도 내포한 것이다. 성경적인 예언이란 ‘미래를 알려주는 점’이 아니라 ‘바라는 것이 되도록 하는 믿음의 말’이다.<2017.11.1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