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3) (이사야 8장 16-22절)
1. 말씀에 열려있는 마음
본문 16절을 보라.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양피지에 적어 두루마리로 싸서 소수의 제자만 듣게 하라는 말씀이다. 즉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말씀이 막히는 것처럼 큰 불행은 없다. 말씀이 지겹게 느껴지는 것은 상처와 불행이 임할 징조이고 말씀이 즐겁게 느껴지는 것은 은혜와 축복이 임할 징조다.
말씀을 지겹게 생각하면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는 유혹이 찾아온다(19절).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란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유혹하는 영매’를 뜻하고 마술사는 원어로는 ‘야데오님’이란 말로 점쟁이를 뜻한다. 말씀을 지겹게 생각하고 신비한 모습을 한 무속신앙에 미혹되면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20절),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리고 환난과 흑암과 고통 중에 처한다(21-22절).
다시 말씀 중심적인 삶으로 돌아오라. 그것은 쉽지 않다. 재미있는 소설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얼마나 고역인가? 때로는 주일예배 때 가만히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한 그 말씀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긁고 마음을 찌를 수도 있다. 말씀이 칼이 되어 영혼과 자존심을 찌르면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을 듣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말씀이 자신을 찔렀다는 것이 큰 축복이다. 그 말씀이 내게 한 말로 들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 찔림을 받도록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들으라. 무슨 말씀이든 “이것은 나를 두고 한 말씀이다. 내게 주신 말씀이다.” 하고 듣는 마음이 은혜받은 마음이다. 가끔 설교 후 “제게 주신 말씀이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말은 예배를 잘 드렸다는 뜻이다. 그처럼 말씀에 찔림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찔림을 받은 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이를 갈고 귀까지 막았다.
문제는 듣는 귀가 없는 것이다. 귀를 막으면 축복의 길도 막히고 귀가 열리면 축복의 길도 열린다. 작은 환경 메시지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승화시켜 들을 줄 아는 영적인 귀를 가진 것은 최고 능력 중의 하나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베드로의 회개하라는 설교에 마음이 찔려 회개하고 그날 삼천 명이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기쁘게 받고 실천하면 그때부터 말씀은 영혼을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축복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말씀은 척박한 땅에서도 기필코 싹을 틔우는 민들레 홀씨처럼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역사를 일으킨다. 말씀을 붙잡고 살면 희망의 싹이 나고 열매도 맺힌다. 말씀 중심적으로 삶을 재편하라. 조금이라도 더 말씀을 듣고 더 성경을 보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라. 그러면 신기하게 문제가 풀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2017.11.2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