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기초가 아닌 것 (이사야 65장 13-16절)
5. 무질서와 독선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다. 기독교의 진리는 더욱 그렇다. 사랑도 질서 있는 순결한 모습 안에서 아름답게 되듯이 진리도 질서 있는 모습 속에서 그 아름다움이 빛난다. 진리가 무질서와 독선으로 흐르면 거짓이 된다. 질서의 하나님은 무질서 속에 진리를 두시지 않는다. 이단 교주가 진리를 말한다면서 청중에게 상스러운 욕을 다반사로 하면 그 말은 위선과 거짓이다. 안찰기도를 한다면서 때리고 발길질을 하고 여자의 몸을 마구 주무르는 것도 위선이다.
방언의 은사를 주겠다고 “할렐루야! 주여!”란 말을 천 번 하도록 시키면서 미신적인 주문을 방언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은사를 모독하는 행위다.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해도 안 된다. 잘 싸우는 집사에게 “교인이 싸우면 되느냐? 화해하라.”고 할 때 “진주를 개에게 던질 수 없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화해를 거부하면 안 된다. 용서와 사랑을 외면하면 진리가 다가오기 힘들다. 무질서와 독선은 진리의 적이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이란 책에서 대중 조작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거짓말을 할 바에는 크게 하라. 대중은 작은 거짓말에는 잘 속지 않지만 큰 거짓말에는 잘 속는다. 그들도 작은 거짓말은 잘 하지만 큰 거짓말은 감히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거짓 우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깨어 근신하라.
참된 진리의 기초는 십자가에 있다. 십자가는 영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가장 어두웠던 길이면서 가장 밝았던 길이다. 인간의 증오가 극점에 이르렀기에 가장 어두웠던 길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도 극점에 이르렀기에 가장 밝았던 길이다. 십자가는 역사의 분수령이다. 과거의 모든 복된 길은 십자가로 향했고 현재 및 미래의 모든 복된 길은 십자가에서 시작된다. 십자가의 복음은 가장 기쁜 소식이다. 감정, 의지, 환경도 다 변하지만 십자가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믿음도 십자가의 진리에 놓일 때 굳건해진다.
십자가는 부활을 약속한다. 십자가를 질 때 부활도 믿으라. 십자가의 몸부림은 부활이란 최후 승리를 위한 것이다. 부활은 육신의 부활만 의미하지 않는다. 진리를 받아들여 삶에 주님의 향기가 나타나면 삶이 부활한 것이고 예수님의 뜻대로 사랑과 화해를 실천하면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 감정이나 의지보다 십자가의 사랑을 앞세워 전인적인 부활을 꿈꾸라.<2018.5.2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