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심을 버리라 >
비전은 욕망의 성취나 성공 수단이 아니다. 잘못된 비전은 영혼을 어지럽히고 교회를 어렵게 만든다. 교회가 외적으로 커지면서 예수님의 명예보다 사람의 명예가 더 올라가면 교회도 어려워진다. 요새 한국 교회가 많이 어려워지면서 교인도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 부흥하는 교회가 거의 없다. 왜 그런 위기가 생겼는가? 한국 교회의 위기에는 숫자적으로 많아지고 건물이 커지는 것이 진짜 부흥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있고 교회 성장이란 미명하에 숨겨진 욕망을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도 있다.
어느 날 몸에서 혼자 노는 세포가 생겨났다. 그 세포는 다른 세포를 생각하지 않고 주변 양분을 다 빨아들여 혼자만 커졌다. 그렇게 혼자 비대해진 세포가 암세포다. 결국 그 암세포가 전체 생명을 죽이면서 나중에는 스스로도 죽는다. 혼자만 커지려고 하면 암적 존재가 되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추락한다. 성장 지상주의로 인해 교회의 본질을 잃는 것은 하나를 얻고 둘을 잃는 어리석은 모습이다.
어느 날 바보 한스가 주인에게서 금덩어리 하나를 품삯으로 받고 귀가했다. 그때 말 한 필을 끌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그 말이 갖고 싶어 금덩어리와 말을 바꿨다. 다시 길을 가다가 거위가 좋게 보여 말과 거위를 바꿨고 다시 길을 가다가 예쁜 고양이가 좋게 보여 거위와 고양이를 바꿨다. 다시 계속 가다가 숫돌이 좋게 보여 고양이와 숫돌을 바꿨다. 얼마 후 개천을 건너는데 숫돌이 무겁게 느껴져서 숫돌을 개천에 버린 후 중얼거렸다. “귀찮은데 잘 버렸다.”
소중한 것을 덜 소중한 것으로 바꾸고 나중에는 다 잃고도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 모습인가? 외적인 성공주의에 빠져 믿음과 교회의 본질을 잃고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 근시안적인 성공보다 100년 및 1000년 후의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천국 상급까지 생각하면서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삶을 통해 평화의 사자가 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라. <21.1.2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