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5단계 (로마서 10장 11-15절)
< 구원에 이르는 5단계 >
사람의 마음은 천국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마음의 천국을 만드는가? 빌립보서 2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마음은 천국이 되고 세상에 대해 당당해진다. 그 마음을 입술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구원을 얻으려면 믿기로 한 마음의 결단을 입으로 시인하고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음의 결단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사랑해도 “사랑해요.”란 말을 잘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고 증거하면서 성도답게 행동해야 한다.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는가? 5단계의 요건이 있다.
1. 예수님을 부르라
본문 11-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차별 없이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다. 본문 앞 10절에 나오는 “입으로 시인하다.”는 말씀과 본문 13절에 나오는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씀은 사실상 같은 말씀이다. 초대 교회 때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 그때 로마병사에게 잡히면 “가이사가 주시다.”는 고백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이 주시다.”라고 끝까지 고백하면서 장렬하게 죽어갔다.
그런 핍박이 없어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처럼 예수님을 주님으로 진심으로 고백해야 한다. 가끔 대중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함으로 손해와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 생긴다. 그때도 용감하게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시인하라. 인간적인 죄와 허물과 연약함으로 인해 아무리 추락한 모습을 보여도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시인한 영혼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삭제되거나 하나님의 시선 밖으로 제외되지 않는다.
2. 믿음을 가지라
누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본문 14절을 보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초대 교회 때 주의 이름을 부르면 목숨이 위태했기에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크고 차원이 다르다.
어떤 성도는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성경 내용이나 교리도 꽤 알지만 그것이 믿음은 아니다. 아는 것만 가지고 말한다면 귀신도 지식적으로는 잘 안다. 마가복음 5장 7절을 보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은 귀신같이 예수님을 알아본다. 그처럼 귀신이 예수님을 안다고 귀신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예수님 안에서 한없는 평강을 누리는 것이다. <2017.9.25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