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으로 사는 길(1) (이사야 60장 1-3절)
지인을 어떤 자리를 약속하고 오라고 부르면 나중에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교회의 무질서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당시에 신학교에서 가르친 신학생 중 지금도 필자가 부르면 무보수로 와서 봉사할 좋은 제자가 꽤 있지만 그렇게 하면 오히려 교회에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 협력 전도사가 많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아니다. 머리만 많은 역피라미드형 공동체가 되면 오히려 역동성을 잃기 쉽다.
평신도에게 좋은 직분을 약속해서 교회로 이끄는 것도 안 좋다. 교회 성장만 생각하면 그런 편법에 대한 유혹을 받지만 그것도 부작용이 많다. 직분이나 자리를 약속하고 누군가의 참여를 요청하면 당장에는 좋지만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편법을 좋아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심 없이 공동체를 찾아와 계산과 이익과 자리를 초월해 헌신하고 그 헌신을 인정받아야 참된 은혜와 축복의 문이 열리고 결국 좋은 자리도 얻는다.
원칙에 충실하고 정직하라. 하나님은 순전하고 정직한 심령에게 은혜를 주신다. 왜 교회에 나오는가? ‘좋은 것’을 얻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자기를 좋게 만들지 않으면서 좋은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떠나는 것은 성숙의 기회를 차 버리는 태도다. 교회는 좋은 것을 얻으려고 모인 곳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모인 곳이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과 회의만 생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그 말은 “너의 부족함을 알고 너부터 개선하라.”는 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네가 누구의 소유인지 알라.”고 말씀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렇다면 그에 버금가는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라.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나눔과 헌신의 의미를 아는 건강하고 정직하고 바른 성도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성도가 세상의 빛 된 존재로 우뚝 서게 된다.<2018.5.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