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의지하지 말라(2) (요한복음 2장 23-25절)
불평이 체질인 사람은 좌우명이 이렇다. “항상 불평하라. 쉬지 말고 불평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너무 힘들어서 잠깐 불평하는 것은 괜찮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아신다. 문제는 체질화된 불평이다. 그때는 하나님도 외면하신다. 불평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좌우하지 않게 때로는 장벽을 놓으라. 공동체가 저주와 불행의 사슬에 묶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그것은 불평하는 사람에게 변화의 기회를 주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다.
변화와 싸우려고 하지 말고 변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과도 싸우려고 하지 말라. 다른 길로 가야 할 상황에서 생기는 이별로 인해 내일의 희망을 잃을 정도로 충격 받지 말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변화를 수용하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허락하신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사랑할 대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시지 않았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려고 군사를 모집할 때 처음에 32000명이 모였다. 그때 하나님은 너무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두려운 자는 다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22000명이 돌아갔다. 우르르 떠나는 무리를 보며 “하나님의 음성이 왜 이래?” 하는 생각이 들며 낙심도 되었을 것이다. 그때 곧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이 들릴 줄 알았는데 위로는커녕 남은 10000명도 너무 많다고 하심으로 최종적으로 300명만 남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조치한 것이지만 강한 대적을 앞두고 떠나는 31700명을 보면서 얼마나 실망이 되었겠는가?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느냐.”보다 “얼마나 바른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결국 그날 밤 하나님은 끝까지 남은 300명을 통해 수십만의 미디안 군사를 물리치게 하셨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어떤 사람을 떠나가게 하시는가? 그래야 하나님이 계획하신 최선의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나도 너무 낙심하지 말라. 그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인생의 후퇴가 아니라 새로운 축복의 장으로 나아가는 전진이 될 수 있다. 믿음이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아멘!” 하는 것이다. 성도는 내 뜻만 가지고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존재다. 내 뜻은 불행의 문을 여는 열쇠이고 하나님의 뜻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다.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살 때 사랑과 정의가 겸비된 세상을 만들려는 나의 거룩한 투쟁은 결코 무력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호수아 5장을 보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은 길갈에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다.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의 할례는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적들이 쳐들어오면 꼼짝없이 죽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결국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거의 연전연승을 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늘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나아가라.<2019.1.29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