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바라보라(2) (요한복음 9장 35-41절)
기능적으로 사람의 눈은 좋은 편이 아니다. 새들은 작은 눈으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의 벌레까지 볼 수 있다.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육안이 아닌 영안이다. 왜 하루의 첫 시간에 말씀을 보고 기도하면 좋은가? 그때 영안이 열리면서 축복의 문도 열리기 때문이다. 늘 이런 고백을 가지고 살라. “하나님!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영적인 맹인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압니다. 새벽기도를 생활화하게 하소서.”
영안을 신비한 환상을 보는 눈으로 오해하지 말라. 믿음의 눈으로 용기 있게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나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앞날을 잘 준비하는 것도 영안이 열린 것이다. 리더의 비전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영안이다. 리더는 현실적인 것 이상의 가치관과 더 나은 삶을 도전하면서 팔로워를 복된 미래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다 담을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그 말은 지금보다 더 소중하고 보람된 일이 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찾아 도전하고 격려하는 일이 리더의 일이다. 팔로워가 리더의 삶을 교사나 반면교사로 삼고 얻어야 할 것도 영안이다. 사람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도 많이 배운다. 사람의 체험은 위대한 책과 같다. 그 체험을 잘 승화시키면 노련한 능력이 자기도 모르게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런 체험을 통해 잘 배워서 선견지명이 생기는 것도 영안을 가진 것이다.
영안이 열리려면 잘 들어야 한다. 듣지 않는 사람의 잘못된 소신은 큰 해를 끼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전에 직원들이 건물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여러 번 문제 제기를 했지만 “이렇게 크고 화려한 건물이 어떻게 되겠어?”라며 경영진이 그 말을 무시해서 무서운 비극을 초래했다. 잘못된 결정을 줄이려면 잘 들으라. 잘 들으라는 말은 무조건 “예스!” 하라는 말이 아니다. 잘 들은 후에 “노!”라고 했다면 그것도 잘 들은 것이다.
욕심도 잘 버려야 한다. 선견지명이 없는 무능의 최대 원인은 대개 욕심이다. 단기성과에 집착해 철저한 사전 준비나 이벤트 실행 능력도 없이 일을 벌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남 탓만 하는 것도 욕심 때문이다. 반면에 욕심을 버리면 영안이 열리면서 선견지명도 생기고 배려심과 여유도 생긴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그런 영안이 있기를 원하신다.<2019.3.2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