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랑받는 길(1) (요한복음 11장 1-16절)
사람들은 마리아와 비교해 마르다를 낮게 평가하지만 예수님은 마르다도 마리아만큼 사랑하셨다.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같다면 마르다는 베드로와 같다. 마르다가 말실수가 많았지만 그래도 마르다를 잘못된 시각으로 보지 말라. 베드로도 실수가 많았지만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은 약점을 보고 주실 사랑을 저울질하지 않고 성격대로 사랑하고 쓰신다. 성격에 약점이 많아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면 얼마든지 쓰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주님께 드릴까?”에 더 관심을 가지라.
초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생각을 주로 하지만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드릴 생각까지 한다. 처음 교회에 올 때는 문제를 해결받고 상처를 위로받고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오지만 점차 신앙 연륜이 깊어지면 드리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믿음’을 가지라. 남은 물질을 드리기보다 구별한 물질을 드리고 남은 시간으로 봉사하기보다 구별한 시간으로 봉사하라.
사람이 계산하는 복은 ‘취하는 것’으로 계산되지만 하나님이 계산하시는 복은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것’으로 계산된다. 취할 생각이 많으면 섭섭한 마음이 자꾸 싹트지만 드릴 생각을 하면 섭섭한 마음이 싹트려다가 곧 사라진다. 전화가 없어 섭섭함이 싹틀 때 “내가 전화하자.”라고 결심하면 신기하게 섭섭함이 풀린다. 누가 찾아와주지 않아 섭섭함이 싹틀 때 “내가 찾아가주자.”라고 하면 섭섭함이 풀린다. 부모가 적게 주어 섭섭함이 싹틀 때 “내가 부모님께 드리자.”라고 결심하면 신기하게 섭섭함이 풀린다.
섭섭함이 싹트는 이유는 받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주는 삶을 결심하면 신기하게 섭섭함이 풀린다. 마음을 잘 가꾸라. 섭섭함이 싹트려고 하면 “내가 지금 받으려는 마음이 충만하구나. 먼저 주려고 하자.”라며 섭섭함의 싹을 초기부터 자르라. 하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받으려는 마음보다 주려는 마음을 가지라. 성 프랜시스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라는 기도의 핵심 메시지도 “받기보다 주는 삶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받으려는 삶에는 공허함이 그치지 않지만 주려는 삶에는 만족함이 넘친다. 받는 삶을 통해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기 전에 주는 삶을 통해 ‘높은 자아’를 이루려고 하라. 받기보다 주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해주고 사랑받기보다 사랑해주기를 힘쓰면 섭섭함이 틈타지 않는다. 성도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을 비롯해서 수많은 가치 있는 것을 이미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드리고 헌신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며 실천하는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도 넘치게 된다.<2019.4.4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