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의 축복을 얻는 길(1) (창세기 17장 1~14절)
<사탄의 인본주의를 주의하라>
어느 주일에 20대 청년과 50대 장년이 교회에 처음 왔다. 그때 담임목사가 20대 청년은 무관심한 것 같고 50대 장년만 환대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겉모습만 보고 한 교인이 목사가 사람을 차별한다고 시험에 들었다. 차별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앞서서 내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시험에 드는 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휴머니즘 같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자기 의의 표출이 될 수 있다.
목회자에게는 세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청년의 환대가 아버지뻘인 목회자의 환대보다 나을 수 있기에 20대 청년은 청년과 교제하게 하고 목회자는 50대 장년과 교제한 것인데 그것을 차별로 여기고 시험에 들면 잘못이다. 더 나아가 목회자가 환대한 그 50대 장년은 오래전부터 목회자의 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고 크게 헌신해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헌신하다가 목회자에게 직접 감사하고 싶다고 처음 찾아왔기에 그를 특별히 환대하는 것은 감사를 아는 태도지 차별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런 이면의 스토리도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 "목사님이 청년과 장년을 차별해?"라고 단정하고 시험에 든다면 지나친 자기 의다. 겉모습만 보고 차이를 차별로 단정한 후 "차별받는 사람을 위해 이 한 몸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는 희생도 감수하리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는 어리석은 태도다.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면 어디서든지 신실하게 순종하고 충성하지 못해서 수시로 시험 들다가 번성의 축복을 놓친다.
사람을 외모나 소유로 차별하면 잘못이지만 헌신자를 높여주는 것은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의와 감사를 아는 것이다. 사탄은 의와 감사를 아는 삶까지 차별로 인식시키는 미혹의 천재다. 결국 사탄의 인본주의와 가장 상극이 되는 삶이 있다.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힘써 실천하면 행복하고 실제적인 복도 얻지만 사탄의 인본주의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지 말라. 사탄의 인본주의가 겉으로는 따뜻하게 보이고 의로운 척하게 만들지만 결코 좋은 사상이 아니다. <2019.9.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